역사 이야기

조다(助多)의 항변

석탈해 2009. 9. 7. 16:02

장수왕의 아들은 ‘조다’이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바보를 그의 이름에 빗대어 ‘쪼다’ ‘쪼다 같은 놈’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의 아버지인 장수왕은 19세에 재위에 올라 79년을 왕 노릇 하다가 98세에 세상을 떠난다.
이름 그대로 오래 살아서 장수왕(재위 413~491)이다.
부왕이 너무 오래 살다보니 조다는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먼저 죽어 태자지만 왕도 못해 본 바보라고 ‘쪼다’라고 하는 모양이다.
현재 남아있는 어느 사서의 기록에도 조다가 태어난 해와 사망한 해를 기록해 두지 않았으니 대략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광개토왕이 장수왕을 20세에 낳았으니 그 아들인 장수왕이 조다를 20세 쯤에 낳았다면
장수왕이 사망 했을 당시 살아 있었다면 68세 전후 이다.
당시로 볼 때도 고령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조다는 당연히 그 이전에 사망했을 것이다.
조다는 태자이면서 태대사자의 직위를 겸해 국가의 기밀· 법령제정· 징발 등을 취급하는 고위관리를 겸했을 정도면
어느정도 나이가 들었을때 라고 여겨지며 적어도 장수왕 사망 10~20년 전에 죽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조다의 사망 시기는 40~50대 정도였을 것이다.
427년(장수왕 15)에 장수왕은 남진 정책을 펴며 평양으로 천도하고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여 오늘날 남한강 유역인 충주 일대에 까지 세력을 확장한다.
이때부터 조다는 그의 부왕인 장수왕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을 것이다.
장수왕이 그의 이름을 ‘조다(助多)’즉 도움이 많은 자 라고 지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점령지의 백제, 신라 사람들에게 조다는 엄격한 국법을 적용했을 것이고
접경지의 주민들도 그에 대한 두려움과 미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다 같은 놈’이라고 욕설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쪼다’의 어원이 ‘조다’에서 나왔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도 없다.

조다는 늙은 아버지를 상왕으로 앉히고 왕이 될 수 있었지만
아버지 장수왕을 도와 역사의 뒤편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이고,
그랬기에 고구려가 최 전성기를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최고의 자리는 주변에 최고의 참모가 있어야 더욱 빛난다.
장수왕의 빛나는 업적 뒤에는 그가 믿을 수 있는 최고의 참모인 아들 조다가 있지 않았을까?
장수왕은 조다가 없었더라면 진짜 ‘쪼다’가 되지 않았을까?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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