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월8일 일본 히로히토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봉창 의사(1900~1932)가 의거 직전 찍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문제의 사진(왼쪽)은 1931년 12월31일 밤 중국 상하이에서 이 의사가 일왕을 폭살할 결심으로 한인애국단에 입단할 때 찍은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검인정 교과서와 백과사전 등에 실려 있을 정도로 이 의사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유명한 사진이다. 사진에서 이 의사는 태극기 앞에서 선서문을 목에 걸고 양손에 수류탄을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출간된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너머북스)에서 이 사진이 “한인애국단 선서식 때 찍은 사진도 아니고 수류탄을 든 두 손과 배경의 태극기는 그린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목에 건 선서문도 이봉창의 선서문으로 알려진 것의 필체와 다른, 누군가가 새로 쓴 것”이라면서 “얼굴의 목선도 없어 얼굴을 다른 사진에서 오려붙인 합성사진”이라고 말했다. 이 사진은 일제시대에 발간된 어떤 책자에서도 확인되지 않으며 1946년 3월 출간된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기 <도왜실기>의 한글판에 처음 등장한다고 배 연구원은 밝혔다.
배 연구원은 이와 함께 한인애국단 입단식 때 찍은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사진(오른쪽)을 제시했다. 앞의 사진과 배경과 구도가 같지만 이 의사의 표정은 어둡다. 이 의사가 거사 동기를 밝히기 위해 체포 당시 지니고 있었던 이 사진은 1932년 상하이에서 출간된 중국어판 <도왜실기>에는 실렸지만 한글판에서는 빠졌다. 편집 과정에서 고의로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배 연구원은 “수류탄을 두 손에 들고 삶을 초월한 듯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봉창의 사진이 ‘창안’된 이미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봉창의 삶도 과장되거나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신화화된 ‘인간 이봉창’이 “황국신민을 꿈꾼 식민지 청년이었고 식민지 근대의 향락문화를 소비한 ‘모던 보이’였지만 김구를 만나 일왕을 죽일 결심을 하게 되면서 평범한 삶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배경식 역사문제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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