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년 10월 강진. 서울에서 훌륭한 분이 귀양을 와서 동문 밖 주막에 계시는데, 아이들을 가르치신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전의 아이이며 열 다섯 살이었던 한 아이가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글을 배우러 간 지 며칠이 지나 선생님이 말했다.
“문사(文史: 문장과 사서)를 공부해보도록 하여라.”
선생님이 공부를 권유하자, 아이는 자신이 인정 받고 있다는 생각에 내심 매우 기뻤지만 부끄러운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머리가 둔하고[鈍], 꽉 막혔고[滯], 아주 거칠답니다. 제가 어찌 그런 공부를 하겠습니까? …”
선생님이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 세 가지가 있지. 첫째, 기억이 빠른 점이다. 척척 외우는 사람은 아무래도 공부를 건성건성 하는 폐단이 있단다. 둘째, 글짓기가 날랜 점이다. 날래게 글을 지으면 아무래도 글이 가벼워지는 폐단이 있단다. 셋째, 이해가 빠른 점이다. 이해가 빨라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쏙쏙 받아들이면 아무래도 앎이 거칠게 되는 폐단이 있단다. 넌 그것이 없지 않느냐?”
선생님은 말을 계속 이었다.
“네가 스스로 둔하다고 하는데, 둔한데도 열심히 천착(穿鑿)하면 어떻게 될까? 계속 열심히 뚫어 구멍을 내면 큰 구멍이 뻥 뚫리고, 꽉 막혔던 것이 한번 뚫리게 되면 그 흐름이 왕성해지고, 거친데도 꾸준히 연마하면 그 빛이 윤택하게 된단다.”
장점이 오히려 단점이 되고,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미묘한 이치를 들으면서, 아이는 선생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지.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지.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지. 그렇다면 부지런히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하느니라.”
이 아이는 이런 선생님의 가르침에 불끈 힘이 났다. 그 후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겼다. 늙어 일흔 다섯 살이 되어서도 이 장면이 너무 뚜렷하여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선생님은 바로 다산 정 약용이었고, 그 아이는 제자였던 황상이었다.
----------------------------------------------------------------김태희. 다산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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