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짓누른 그 지도
사진은 http://blog.daum.net/kone1 도흥나루님 블로거에서 퍼옴
몇 년전 일본항공(JAL)을 탔다가 좌석 앞에 있던 지도를 보았습니다.
그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일본 열도와 일본 바다만 색칠을 한 지도였는데, 파란색으로 칠해진 일본 바다의 광활한 크기에 마치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일본 열도의 면적은 한반도의 두 배가 안 되지만 바다까지 합친 양국의 면적 차이는 열 배가 넘게 벌어집니다.
국제법적으로 모두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일본은 집요하게 바다 확장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일본의 가장 서쪽 섬 센카쿠 열도는 대만 코앞까지 가 있고, 가장 남쪽 섬 오키노도리의 위도는 필리핀 북단과 같았습니다.
가장 동쪽으로는 일본에서 하와이 쪽으로 3분의 1 쯤까지 나아간 곳에 미나미도리가 있었습니다.
마치 북태평양 서쪽 대부분을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지도에서 일본 바다는 한반도를 완전히 포위한 형국이었습니다.
일본 바다를 통하지 않고 우리가 밖으로 빠져 나갈 길은 대만 해협뿐인 것 같았습니다.
바다를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 것이 인류의 역사이고, 21세기는 바다의 시대라고 하는데
우리는 어쩌다 이 좁은 바다에 갇혀 살게 되었는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바다 전도사’인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에 따르면, 우리는 “전국 방방곡곡(골짜기)”이라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전국 나루·포구(쓰쓰우라우라)”라 한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우리 유행가는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도 없었을 것”이라고도 노래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라가 바다를 넘어 밖으로 뻗어 나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장보고와 이순신이 있었습니다만 고려 이후, 특히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바다와 담을 쌓았습니다.
그때 중국과 일본은 바다로 진출하였습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보다 앞선 1400년대 초 중국의 정화(鄭和) 장군은 200~300척의 대함대를 이끌고 인도·아랍·아프리카까지 나아갔습니다.
한 번 나갈 때마다 함대 승선 인원이 2만명이 넘었습니다.
정화 함대의 주력함들은 콜럼버스가 탔던 배보다 5배나 컸다고 합니다.
중국은 그 후 해외 원정에서 후퇴하면서 국력도 유럽에 역전당했습니다만, 동남아 바다는 계속 내해(內海)처럼 지배했습니다.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까치)에 따르면 1600년대 초 국제도시였던 필리핀 마닐라엔 3000여 명의 일본인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나가사키와 마닐라 사이의 동중국해를 헤치며 일본 상품을 스페인 무역상들에게 팔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일본이 북서태평양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조선은 마닐라라는 도시를 제대로 알기나 했는지 의문입니다.
한 문헌은 “(그때) 마닐라에서 보는 사람들은 스페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아프리카…”라고 나라를 일일이 열거했지만, 조선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현격한 국력 차이는 그때 그 바다에서 갈라진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만큼 된 것은 수출 상품을 들고 다시 바다로 나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국토는 좁지만 해안선의 길이는 중국·일본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해외에 사는 한민족 숫자는 세계 4위입니다.
해양 전략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해군 건설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비해선 너무 부족합니다.
독도를 갖고 큰일 난 듯 난리입니다만, 독도는 일본이 뭐라고 하건 앞으로도 영원히 한국 땅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숙제는 독도가 아니라 우리보다 십여 배 넓은 바다를 안고 한반도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는 일본의 해양력을 어떻게 돌파하느냐는 것입니다.
동원산업 김 회장은 지도를 거꾸로 걸면 해양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고 말해왔습니다.
실제 지도를 거꾸로 걸어 보니 우리나라는 태평양으로 나가는 전초기지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그 바다는 일본의 바다입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퍼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괴 없는 개혁은 없다” … 만해 한용운 (0) | 2010.05.26 |
---|---|
구들에 담긴 생태 철학 (0) | 2010.05.04 |
교과서의 이봉창의사 사진....수류탄 든 손과 태극기 그린 것 (0) | 2010.04.28 |
평생 잊지 못할 선생님의 말씀 (0) | 2010.03.02 |
'트러블 메이커'가 살아남는 세상 (0) | 2009.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