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에서 백두산 까지는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까지 4시간 정도 걸렸다.
우리가 오르는 코스는 백두산 서파 쪽이었다.
12시경에 백두산 전용 순환 버스로 갈아타고 굽이굽이 좁은 포장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30분쯤 오르니 키 큰 나무들은 점점 작아지고 띄엄띄엄 보이는 작은 나무사이로 백두산 야생화 평원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이슬을 잔뜩 머금은 야생화 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빗방울이 버스 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차량이 안개에 휩싸여 버렸다.
열 번 와서 한두 번 보기도 어렵다는 백두산 천지는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가 멈출 때는 제법 많은 안개비가 몸을 적실 정도였다. 몇 미터 앞도 안보일 정도로 안개 자욱한 계단 길을 천천히 올랐다.
백두산 천지를 보지 못하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 여기 백두산에 내가 발을 디뎠다는데 의의를 두자. 언제 또 여기 내가 오겠냐.’
혼자 중얼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발 옆으로 이름 모를 노란 꽃이 이슬을 가득 머금은 채 안개 속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숨도 가쁘다...천지를 못보고 간다고 생각하니 힘이 더 들었다.
그런데 백두산 정상을 백여 미터 남겨두었을 때 따뜻한 기운이 머리에 느껴지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 다시 안개가 낄지 모르는 상황이라 계단 중간에서 열심히 동료들과 사진을 찍었다. 이어서 단숨에 남은 계단을 올랐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내 여기 왔노라’며 감동에 잠시 젖었다.
천지는 농사철 큰일꾼들 밥상에 수북이 담긴 밥그릇처럼 하얀 안개를 가득 품고 있어서 그 속내를 다 보여주질 않았다.
산정에나마 안개가 걷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백두산에는 천지(天池)가 있고 천지신명(天地神明)도 있었다.
천지를 지키는 신이 마치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듯이 장막을 걷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큰 숟가락으로 단숨에 천지에 담긴 밥을 비운 듯 했다.
안개가 걷히면서 희미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천지를 보며 환호와 탄성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천지로부터 뭉클한 기운이 끌어 올라 가슴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태곳적 화산 폭발로 천지를 이루고 용암으로 계곡을 만들고 장구한 세월이 백두의 자연을 만들었건만 다들 백두산을 정복한 것 같은 자세로 천지를 병풍삼아 포즈를 취했다.
그런데 경계비 하나를 두고 이쪽은 중국이요 저쪽은 조선이란다.
알고는 왔지만 실제 보니 억울하고 내 손에 있던 보물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가이드가 백두산 위에는 중국 측 관리원이 있어서 그곳에서 종교행사나 한글이 적힌 현수막을 펼칠 수 없으며 적발 시 많은 벌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때문에 교직원 친목회에서 미리 준비해간 ‘아! 백두산’이라 적힌 대형 현수막은 아예 꺼내 보지도 못했다.
이제 온 세상이 청명해 졌다. 어제 서해에서 하늘로 뛰어오른 해는 오늘 백두산 위에 걸려 있었다.
천지를 배경으로 한장!
내려오는 발걸음은 천지를 알현(謁見)한 뒤라 가벼웠다. 오를 때 안개 속에서 잘 보이지 않던 희고 노란 야생화도 그 아름다움을 한껏 내 뿜고 있었다.
천지까지 태워주는 가마...바가지 조심!
천지아래 셔틀 버스 주차장 주변의 가게들.
백두산 안에서는 흡연금지이나 저 가게 안에서 차 마시거나 하면 가능함.
식사는 셔틀 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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