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중국: 단동항 그리고 인천으로 (2007년 7월 19일~20일)

석탈해 2009. 9. 8. 16:50

 

 

또 다시 들길과 압록강변 길을 따라 달렸다.
태평만 댐을 거쳐 한참을 더 가는 중에 오랜 버스 여행의 피곤함이 몰려와 잠깐 졸았는데,  가이드가 멀리 산정을 가리기며 산위에 보이는 것이 박작성이라고 해서 눈이 번쩍 띄였다.
수업시간에 동북공정을 얘기 하면서 사용하던 동영상 자료 중에 박작성에 대한 내용이 있다.
박작성은 고구려가 당의 침략을 막기 위해 압록강 변에 쌓은 방어용 전략 거점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압록강 변에서 만리장성의 흔적을 찾다가, 오히려 박작성과 성내에서 고구려 우물터와 각종 유물이 나오자 서둘러 은폐하고, 옛 성위에 새로 성을 쌓고 이것이 명나라 때 세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 우기며 마치 호랑이가 누운 형태라 하여 ‘호산장성’이라고 부르며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위화도에 있는 북한 주민들의 집들.

 

 

 

왜곡되어 묻혀 지는 것은 고구려역사 뿐만 아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이 1909년 간도협약을 맺어 중국에 넘겨준 간도 땅도 가슴에 아련히 남는다.
원천 무효인 을사조약에 의해 외교권을 행사하여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도 분명히 무효이건만 간도에 대한 영유권 문제는 북한도 남한도 입을 다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대에 주장하는 것과, 주장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법률적으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역사의 오류를 바로 잡는 일이 우리 역사를 연구하고 알리는 일보다도 중요한 또 하나의 큰 과제라고 하시던 어느 노교수의 말씀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단동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북한의 어선으로 보인다.

 

 

 

 
배가 정박했을때 쥐 들이 닷줄을 타고 승선하지 못하도록 밧줄에 끼워두는 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