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는 일제 강점기때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당시 구룡포앞 동해 바다는 황금어장으로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고용해 엄청난 어획고를 올렸다.
구룡포 앞바다에는 일본인 어선 900여척과 조선인 어선 100여척이 떠 있었고 소속된 어부들만도 1만2천여 명, 그 중 구룡포에 주소지를 둔 일본인만 1천명에 이르렀다. 부가 넘쳐던 이 거리에는 요릿집과 상점, 목욕탕, 은행, 이발소, 약국, 세탁소, 사진관, 잡화점, 미용실, 치과 등 등이 이어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당시 이 고장 일본인 부호의 집이다. 현재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홍보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내부로 들어가면 문화재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수 있다.
일본인 가옥 거리를 돌아본다. 100여년의 세월이 지나다 보니 많은 부분이 개보수 되어 현대화 되었다.
다이토 여관이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구룡포 공원으로 올라 가는 계단이다. 계단은 원래 돌계단이었으며 이 위에는 당시 신사가 위치해 있었다.
각 계단 마다 양쪽 끝에 있는 돌기둥이 120개 정도 된다.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돌 기둥 앞면은 한국인 이름, 뒷면은 시멘트 덧칠이 돼 있다. 원래 돌기둥 앞면에는 일본인들이 공원을 조성하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놓았던 것으로 일본인들이 떠나자 시멘트를 발라 기록을 모두 덮어버린 뒤 비석을 거꾸로 돌려 그곳에 구룡포 유지들과 각종 단체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뒷면에는 시멘트를 발라 일본인 이름을 모두 지워 놓았다.
구룡포항이 한눈에 보이는 구룡포공원은 일본 신사가 있던 곳으로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와 충혼각, 그리고 충혼탑이 있다.
일본인 가옥거리를 보존하는데에 찬반이 엇갈린다.
근대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자는 입장과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도 없애버리자는 입장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다. 건물 헐어내고 석조물 몇점 파괴한다고 해서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교훈으로 삼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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