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

영실(營實 )

석탈해 2009. 10. 21. 00:58

 

 

영실 (營實 )  

                                                           김신용


 

 산비탈 가시덤불 속에 찔레 열매가 빨갛게 익어 있다

 잡풀 우거진 가시덤불 속에 맺혀 있어서일까?

 빛깔은 더 붉고 핏방울 돋듯 선명해 보인다

 겨울 아침, 허공의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처럼 눈에 선연해

 눈이라도 내리면, 그 빛깔은 더욱 고혹적일 것이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담장의 철조망처럼 얽혀 있는 찔레 덤불 속

 손가락 하나 파고들 틈이 없을 것 같은 가시들 속에서

 추위에 젖은 손들이 얹히는 대합실의 무쇠난로처럼 익고 있는 것은

 아마, 날개를 가진 새들을 위한 단장일 터

 마치磨齒의 입이 아닌, 부드러운 혀의 부리를 가진 새들을 기다리는 화장일 터

 공중을 나는, 그 새들의 눈에 가장 잘 띄일 수 있도록

 그 날개를 가진 새들만 다가올 수 있도록

 열매의 채색彩色을 운영해왔을 열매

 영실營實이라는 이름의 열매


 새의 날개가 유목의 천막인 열매

 새의 깃털 속이 꿈의 들것인 열매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했을까, 그 유목의 천막에 드는 일

 새의 복부腹部속에 드는 일

 남의 눈에는 영어囹圄 같겠지만, 전락 같겠지만

 누구의 배고픔 속에 깃들었다가 새롭게 싹을 얻는 일, 뿌리를 얻는 일

 그렇게 새의 먹이가 되어, 뱃속에서 살은 다 내어주고 오직 단단히 씨 하나만 남겨

 다시 한 생을 얻는 일, 그 천로역정을 위해

 산비탈의 가시덤불 속에서 찔레 열매가 빨갛게 타고 있다

 대합실의 무쇠난로처럼 뜨겁게, 뜨겁게 익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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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골 시편에 있는 김신용님의 영실이라는 시 입니다.

까치밥이라고 불렀던 찔레열매 영실.

새의 먹이로 살을 다 내어주어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대신에

뱃속에서 씨만 남겨 다음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다시 한생을 얻는다고 하는 시인...

시인의 눈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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