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이야기

시애틀 추장(Chief Seattle)

석탈해 2011. 10. 29. 11:52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도시 시애틀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나 ‘스타벅스’ 커피의 본고장 정도 일 것이다.

원래 시애틀은 이곳에 살았던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었다.

1854년 미국의 백인 대표들은 인디언 부족을 압박하고 그들의 땅을 팔면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이 제안에 대해 시애틀 추장은 다음과 같은 연설로 거부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것은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로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 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에서 솟아오르는 수액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의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중략)

아무리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의 방식은 당신들의 방식과는 다르다. 우리가 대지를 팔아야 한다면,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그 공기 또한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임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공기이며, 모든 아침마다 우리가 맞이하는 것도 그 공기다. 바람은 나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과 마지막 숨을 주었다. 그 바람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명을 불어다 줄 것이다.

세상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아들들에게도 일어난다. 사람이 삶의 거미줄을 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 역시 한 올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가 거미줄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류시화 옮김, 김영사, 2003)


시애틀 추장은 땅을 팔면 백인의 욕심 때문에 인디언 문화와 전통은 사라지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적 일체감도 사라져 버릴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후일 미국 14대 대통령 피어스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에 감동하여 오늘날 미국 태평양 연안 북부에 자리 잡은 도시의 이름을 그의 이름을 따서 시애틀(seattle)이라고 지었다.  

그의 연설은 백인의 세계가 된 미국이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귀중함을 알게 된 어떤 삶의 철학, 가치관, 그리고 ‘오래된 미래’를 담고 있다.

 

자연속의 만물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데 그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지구가 멍들고 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예전에 모셨던 교장선생님은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세상에 영원한 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잠시 쓰다 두고 갈 뿐이다.”

탐욕스런 세상에서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쉼 없이 경쟁하며 달려가서 삶의 종착점에 서고나면, 까고 깐 양파 속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라 한다.

수양이 부족한 내가 세상 욕심을 털어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삶의 과정은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