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이야기

한국 고추는 과연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들어왔는가?

석탈해 2011. 9. 30. 15:30

 

 

  베란다 고추 농사도 서서히 접을 계절이 왔다.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많이 나더니 몇번 수확하고 마지막에 남겨둔 고추는 붉게 물들었다.

 고추는 일반적으로 임진왜란때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하고 그렇게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설을 부인하는 글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한국고추는 과연 일본으로부터 들어왔는가?

 

  고추는 김치의 역사만큼이나, 우리나라 식품역사와 함께 해왔으며 고추를 빼고 김치나 고추장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고추의 역사는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하여 서양의 고추가 담배와 함께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이라는 설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권대영 등이 『고추이야기』에서 수많은 고문헌 자료를 통해 반증을 제시하면서 고추의 일본 전래설에 대하여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임진왜란 이전에 고추가 만주, 요동 등 북방에서도 이미 재배되고 있었고 김치, 고추장 제조에 사용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고추의 전래역사에 대한 진실을 찾고자 한다.  우리나라 고추의 일본 전래설에 대한 근거자료를 살펴보면, 최남선이 지은 역사서 『고사통(故事通)』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발간된 백과사전격인『산림경제(山林經濟)』와 『성호사설(星湖僿說)』에 고추와 관련된 이름이 처음으로 기술되었고,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유럽의 고추를 담배와 함께 갖고 들어왔을 것이라고 추정한 부분이 있다. 또한 이수광이 1614년 저술한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고추를 가리키는 남만초(南蠻椒)에 대한 기록이 있고, ‘그 도입경로가 왜국인 까닭에 왜개자(倭芥子)라고도 불렀다[有大毒. 始自倭國來. 故俗謂倭芥子. 往往種之.]’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고추가 일본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설이 굳어져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술되고 있다.  그러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기록된 왜개자(倭芥子)가 한국 고추의 유래라고 하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고추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다양한 종이 존재하고 현재 100종 이상이 세계 각국에 각각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다양한 종만큼이나 이름도 다양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 고문헌에서 고추로 추정되는 단어를 뽑아보면 번초(番椒), 호초(胡椒), 초(椒) 등 다양하다. 고추[椒]가 등장하는 기록을 살펴보면 기원전 551~479년에 쓰였다는 『시경(詩經)』에 맨 처음 고추[椒]가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시경(詩經)』은 또한 김치의 어원인 ‘저(菹)’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으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통해 볼 때 중국에 이미 오래전부터 고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233~297년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저술한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도 초(椒)가 나오는데, 이를 통하여 고구려가 지배하였던 요동(遼東)지방에도 고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역사문헌으로 『삼국사기지리지(三國史記地理志)』의 고구려(高句麗) 편을 보면 ‘초도(椒島)’라는 지명이 등장하는데 이는 ‘고추가 많이 생산되는 섬’이라는 의미로 추정되며,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도 고추[椒]가 나온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보면 초(椒), 호초(胡椒), 진초(秦椒), 촉초(蜀椒) 등 다양한 초(椒)가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위의 기록들을 통하여 중국에도 고추가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고추가 있었으며 당시에 이미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지봉유설(芝峰類說)』에도 초(椒)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왜개자, 남만초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고추가 따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고추의 다양한 이름과 품종이 엄연히 문헌에 등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봉유설(芝峰類設)』에 나오는 단 한 가지 명칭인 왜개자(倭芥子)를 가지고 일본 전래설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과연 한국 고추의 유래로 확증할 수 있을까? 만약 임진왜란때 고추가 처음 들어왔다면 어떻게 그 고추가 들어오자마자 불과 1,2백 년 만에 전국적으로 수백 가지 김치의 양념으로 발전하였을까? 이는 현재의 과학적인 논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라 하겠다. 게다가 일본 군인들은 자기 나라에서도 먹지 않던 고추를 왜 전쟁 중에 이 땅으로 갖고 들어 왔을까? 참고로 현재까지도 일본은 시치미[七味]라는 양념에 고춧가루를 조금 뿌리는 정도로 먹는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표현이긴 하지만 “고초당초 아무리 맵다하기로 시집살이보다 매울까?”라는 말이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온다. 여기서의 고초는 고초(苦椒)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추를 한자로 초(椒)로 썼고, 여기에 ‘맵다’는 뜻의 ‘고(苦)’가 붙어 고초(苦椒)가 된 것이 아닐까. 비슷한 품종으로 당초(唐椒), 호초(胡椒), 번초(番椒)가 있으니 이를 한자로 고초(苦椒)라고 쓰다가 오늘날 결국 우리말 고추로 다시 살아났을 가능성은 없는가?  결론적으로 한국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 전해졌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고추의 전래 문제를 확증하기 위해서는 고문헌 사료 조사 분석과 유전자다양성 조사, 생물학적 조사연구 등 다각적인 연구와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식품 및 관련 연구를 하는 많은 학자들의 관심과 논란, 비판적인 반론이 있기를 바란다.

 

<인용 문헌: 권대영, 정경란, 양혜정, 장대자, 『고추이야기』, 도서출판 효일, 서울, 한국,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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