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당돌했다.
3학기 동안 가르쳤고
현재는 담임인 내게 하는 말투가 괘씸했다.
‘저 학교 안가요. 자퇴할 겁니다.’
‘앞으로 집에 전화하지 마세요.’ 딸깍!
내가 미처 말하기 전에 전화기에서는 ‘뚜~’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여름방학 보충수업 시작 날부터 녀석은 결석했다.
사유를 알려고 수화기를 들었더니만 첫 마디가 쌀쌀 맞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단호하게 자퇴를 하겠단다.
살얼음을 디디며 고비를 넘어가나 했는데 결국 우려했던 바가 터진 것이다.
낌새를 보인 것은 5월 중간고사 후부터였다.
어느날 갑자기 녀석이 찾아와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니 다짜고짜 자퇴하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프로 게이머가 되겠단다.
프로 게이머가 되려면 학교에서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그쪽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프로 게이머가 어떻게 되는지,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모르는 상태에서 녀석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만에 한명정도 프로 게이머로 부와 명성을 얻지 않느냐.
학업을 그만두었을때 이것도 저것도 않되면 어떻하려고 그러느냐.
지금 까지 다닌게 아깝지 않느냐.
그래도 정 하고 싶다면 학업을 병행하라고 했다.
녀석과 타협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저녁 자율학습을 빼주겠다는 사탕발림도 했다.
이틀 지나서 타협이 이루어 졌다.
학급 학생들 몰래 둘만의 밀약이 성립되었다.
녀석은 일주일에 두 번 필요한 날에 와서 야간학습 빠지겠다고 했고, 나도 두말 않고 과외 하러 가는 것처럼 하교증을 끊어 주었다.
그 뒤 마음을 잡아가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임시 봉합이었던 셈이다.
녀석은 이미 속으로 곪을 대로 곪았다.
곪은 상처를 도려내지 않고 겉만 꿰매어 두었더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녀석이 게임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라고 했다.
부모 이혼 후 어머니가 양육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생업이라고 소주방을 하다보니 녀석의 하교시간에 일하러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 없는 빈 집에서 녀석의 친구는 컴퓨터였다.
그러다 컴퓨터 게임에 재미를 붙었고 점점 빠져들었다.
그때 집에서 자리를 지키지 못했음을 어머니는 내 앞에서 뒤 늦은 후회를 했다.
이제 머리가 클 때로 큰 녀석은 아무리 설득해도 자신이 쌓아놓은 스타크래프트 성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모자 인연까지 끊자며 협박하여 되돌려 놓으려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새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한다는 투사가 되어 있었다.
벌써 등교를 거부하고 방안에만 틀어 박혀있는 날이 보름을 넘어서고 있었다.
전화만으로 설득이 어렵다고 생각되어 집으로 가겠다고 하니 집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반 친구 몇 명을 대동하고 녀석들이 좋아하는 콜라가 무한 리필되는 패스트푸드점에 갔다.
한 시간에 걸친 반 친구들의 회유에도 녀석은 꾸역꾸역 빵만 먹고 있었다.
겨우 얻어낸 성과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평소 학교에서 녀석은 항상 혼자였다.
주변에 친한 친구도 없었고 말수도 적었다.
휴식시간에도 졸지 않으면 게임을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녀석에게는 게임만큼 재미있는 수업은 없었다.
매 시간 선생님들이 자신에게는 쓸데없는 아이템을 머릿속에 주입 하는 것으로 여겨졌을테니 수업이 지겨웠을 것이다.
무단결석한 날이 한달이 되었다.
결정을 지어야만 했다.
‘선생님 그동안 신경써줘서 고맙습니다.’
‘그래, 부디 그길로 꼭 성공하길 빈다.’
자퇴서에 도장 찍고 나가는 녀석의 발걸음은 무거운 등짐을 벗어던진 짐꾼처럼 가벼워 보였다.
게임보다 재미있는 수업은 할 수 없을까?
오늘 저녁에는 모아둔 수업자료들 속에서 업그레이드된 스타크래프트를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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