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기본도 모르면서...

석탈해 2009. 9. 3. 15:13

고등학교 2학년쯤인 걸로 기억한다
학생들에게 그래도 인기 있는 참고서는 뭐니 해도
수학은 '정석 수학'이었고 영어는 '성문 종합 영어'였다.
'성문 종합 영어' 보기 전에 공부하는 좀 쉽고 얇은 책이 '성문 기본 영어'였었다.
반 친구 중 몇몇은 이미 2학년 들어와서 '성문 종합 영어'를 보고 있었다.
기본에 머물러 있던 내게는 그게 부러웠다.
방과 후에 친구와 시립문화원 독서실에 가곤 했는데
옆구리에 두꺼운 종합영어 낀 그 친구가 여학생들에게도 돋보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나는 서점에서 종합영어 한 권을 구입했다.
하지만, 기본도 잘 모르는 내가 제대로 이해될 리가 없었다.
학교 다니며 유일하게 사설학원 문턱을 넘은 게 그때다.
교문 앞에서 뿌리는 전단을 보고 찾아가 신청했다.
막강, 지존, 독보.....
지금도 학원 강사님들은 왜 전단에 꼭 별명을 쓰는지 모르겠다.
종합영어는 '다크호스'라는 강사 선생님이 강의를 했다.
일사천리로 나가는 강의에 이해는 고사하고 한 시간에 몇 칠판씩 판서하는데 따라 적기도 버거웠다.
결국, 한 달도 채 못 다니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왔다.

우리 국민 전체가 붉은 악마가 되어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고,
전 세계가 우리의 질서 있는 응원에 찬사를 보냈던 2002 한일월드컵대회가 생각난다.
당시 대한민국이 16강을 넘어 4강의 대열에 들것이라고는 누가 상상조차 했겠는가.
그러나 우리 대표 선수들은 해냈다.
4강이라는 성과는 90분간 쉴새없이 뛰고도 남는 강인한 체력이 기본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축구도 기술이전에 기본은 체력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런 기본을 피나는 훈련으로 닦았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기본이라 생각된다.
기본부터 알아야 하고, 기초가 튼튼해야 된다는 건 누구나 안다.
사상누각은 쉽게 허물어진다는 것도 안다.
또 그렇게 가르치고 배운다.
하지만, 기본을 무시하는 걸 가르치는 것도 기성세대다.
아침 등교 길 우리 학교 앞은 늘 학생을 태워주는 승용차로 붐빈다.
좌회전 차선과 직진 차선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고,
좌회전 차선에서 일렬로 늘어서 기다렸다가,
신호 받아서 건너편 학교 진입로로 들어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직진 차선에서 끼어드는 차들이 더러 있다.
자녀를 배움의 전당인 학교에 보내면서도 차선의 기본조차 안 지킨다.
뭘 배우고 오라는 지 안타깝다.

기본도 모르고 건물 짓다 삼풍백화점이 되고,
기본도 안 지키며 다리 놓아 성수대교가 된 것을 벌써 잊었는지 모르겠다.
건물이 높을수록 기본이 되는 기초가 더 튼튼해야 하는 것처럼
인간 관계도 그렇다.
'그 사람은 기본이 됐다.'는 말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한다는 뜻일 것이다.
신문, 방송은 언론으로서의 기본을 지켜야 하고
장사꾼은 상인으로서 기본을 지켜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기본은 지켜져야 하고
부부 사이도 기본은 지켜야 한다.
제자를 사랑하는 것은 스승의 기본이고
스승을 존경하는 것은 제자의 기본이다.
우리가 살면서 서로서로 기본을 지켜야 더더욱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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