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옛날 옛적 호랑이 전화 걸던 시절에.

석탈해 2009. 9. 1. 16:00

"응 그래! 수업마치고 거기서...잠깐...그래 거기..알았재"
복도에서 휴대폰을 든 녀석은 통화를 계속하며 나를 보자 고개만 까닥 거리고 지난다.
급변하는 세상에 맞춰 살아야 겠지만 정말 변해도 많이 변했다.

우리 동네는 내가 초등학교 5~6학년때쯤 전기가 들어오고 그후 마을 공동전화도 이장님댁에 가설 되었다.
그 시절 어쩌다 전화 한통 걸려 오면 동네 마이크가 쩌렁쩌렁거리며 온 마을에 알렸다.
"삑~~ 아! 아! 박실댁에 전~~화가 왔습니다. 박실댁에 설서 전~~화가 왔습니다. 빨리 바드시소!"
이쯤 되면 그 집안에 누구 할 것 없이 먼저 들은 사람이 냅다 이장댁으로 뛴다.
왜 뛰었는지 생각해 보니 아마 전화 건 사람의 전화 요금도 생각해 줘야 하니까 그랬던것 같다.
통화시간도 같은 이유에서 오래 지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정말 용건만 간단히 하고 거의 1분 내외로 끝이 난다.
전화를 거는 쪽도 이장댁까지 뛰어와서 받아야 되는 이런 사정을 알기에 정말 중요한 용건이 아니면 걸지도 않았다.
방송을 들은 이웃은 그집에 무엇때문에 전화가 왔는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이장님집 전화를 사용 할 때는 전화기 옆의 손잡이를 몇 번 돌리고 수화기를 들면 신호가 가고, 잠시 후 면소재지 우체국의 교환원 아가씨가 받는다.
시외지역은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수화기를 놓고 기다리면 교환원 아가씨가 연결해서 다시 벨을 울려준다.그제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면내에서는 소재지 어느가게나 어느동네를 바꿔 달라고 하면 된다. 전화번호가 필요 없었다.
한 통화가 3분이어서 그 이상 시간이 넘어가면 통화 도수가 늘어난다.
그러면 요금이 배가 되기에 몇 통화 했는지 전화가 끝나면 교환 아가씨에게 물어본다.
대게 용건만 간단히 하기에 3분 한통화를 채울리 없는데 그래도 물어봤다.
교환 아가씨에게 물어보는 것은 비용도 들지 않고 이쁜 목소리도 한번 더 들을 수있으니까.
그리고 요금은 전화통 옆에 올려두면 되었다.

전화라는 것을 난생 처음 사용 했을 때나, 카메라폰을 사용하는 지금도 나는 전화를 걸고 받을때 1분을 넘기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주변에 전화통을 잡고 30분 1시간씩 중계방송하는 사람(누구인지는 밝힐수 없음)을 보면 이해를 할 수 없다.
그 긴 시간을 전화하고도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는 식이니 말이다.

한때 호출기(일명 삐삐)를 중.고등학교에서 금지한 적이 있었다.
그 다음엔 휴대폰을 금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그런 규제도 사라져 간다.
휴대폰 없는 학생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거의 모든 학생이 가지고 다닌다.
정말 급한 연락을 위해 잠시 사용하는 것이 통신기기의 주요 기능이지만 지금의 휴대폰의 용도는 그게 아니다.
가끔 쉬는 시간에 교실을 들여다보면 독서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보기 힘들다.
여기 저기서 문자 보내거나 내장된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은 이제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사고력이 한창 성장하는 청소년기에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독서를 기피하고 있으니 큰일이 아닐수 없다.
수업시간에 진동으로 해두지 않아 벨소리에 수업의 맥을 끊어 놓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실 진동 소리도 들리기는 매 한가지다.
그러니 나는 학생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탐탁치 않다.

며칠 전 방송에선 우리나라 휴대폰 시장의 주요 고객은 청소년이라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평균 1년4개월에 한번씩 휴대폰을 바꾼다고 한다.
그런 덕에 우리의 휴대폰이 세계 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통신기기 회사의 성장 이면에는 우리 청소년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건 보이지 않을 게다.
벨소리로 인한 소음이나 스펨문자로 인한 공해, 휴대폰 카메라에 의한 사생활 침해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젊은 청춘들이 너무도 많은 시간을 휴대폰에 매달려 있다.
휴대폰이 손에 없으면 이제는 불안한 세상이 되었다.
예전에 마을 이장댁에 전화 한대뿐이던 시절이 그립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전화가 안 오면 다들 잘 지내겠거니 하던 그시절이 그립다.
짧은 문자 메세지보다는 집배원아저씨가 전해 주는 편지 한통이 그리운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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