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중국: 적산 법화원 (2009년 2월 4일)

석탈해 2009. 9. 24. 08:37

 우리일행은 석도로 이동해 해상왕 장보고가 세웠다는 적산 법화원(赤山 法華院)으로 향했다.

 적산법화원은 산동성 영성시 석도진(石島鎭) 적산(赤山)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당조(唐朝)시기, 신라인 장보고(張保皐)가 지은 것으로 창립 초기에 법화경(法華經)을 읽었다 하여, 유래된 것인데 당시 산동에서 규모가 제일 큰 불교사원이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먼 옛날에 적산은 온통 붉은 것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여기에 사는 적산신(赤山神)이 오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가져다준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불공을 드렸다.역사서에는 당조(唐朝) 전성시기에 신라인 장보고가 출세를 위해 당(唐)으로 불법이민을 하였다. 무예가 능하고 전쟁에 용감하였기에 그는 당시 산동성 서주 절도사 휘하 주력부대 무령군의 군중소장(1000명 병사를 지휘하는 장교)으로 있었다고 한다. 흥덕왕 3년에 신라로 귀국하여 청해진을 창설하고 대사를 봉해 받음으로써 한·중·일 삼국의 해상무역을 독점하고 한·중·일간의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하여 해상무역왕으로 불리웠다. 그는 해상운송사업이 번영하기를 기원하면서 적산에 불교사찰을 지어 많은 스님들을 모셔와 법화경을 읽어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기원 838년 일본스님 옌닌대사 일행은 견당사로 입당하여 법화원에서 3년 가까이 묵으면서 법화원의 많은 신세를 졌다. 옌닌은 당조의 정치, 문화, 경제 등 여러방면의 지식을 배우면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라는 여행기를 썼는데 여행기에 법화원을 상세히 묘사하였다. 귀국한 뒤에도 옌닌은 적산법화원의 은혜를 잊지 못해 일본 교토의 소야산에 적산 이름으로 ‘적산선원(赤山禪院)’을 세웠으며 일본 불교 중종의 3세 좌주에 까지 올랐다. 1988년 영성시(榮成市)에서는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고 선조들의 위업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하여 원래의 위치에 재건하였다.적산법화원의 주요건물인 ‘대웅보전(大雄寶殿)’에는 석가모니 상이 모셔져 있고 ‘관음전(觀音殿)’에는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으며, 북쪽 벽에 장우성 화백이 그린 장보고 대사의 화상이 모셔져 있다. 그 뒤에 있는 건물은 ‘삼불전(三佛殿)’으로 2000년에 새로 건축한 대법당(大法堂)이다.

[ 장보고 기념사업회 https://www.changpogo.or.kr/Default.asp 사이트에서 참조]

 

법화원으로 들어가면서... 

 

 

 

 

 석가모니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바위 만지면 만수를 누린다고 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장보고라고 굴뚝에 새겨 넣었다.

 

 

법화원 뒤쪽으로 보이는 산이 적산(赤山)이다. 

 

장보고 기념관으로 간다. 

 

 중국식 정원을 지나면

 

장보고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장보고 기념관이다. 

 

완도 청해진 유지에 있는 목책 사진도 걸려 있다. 

 

 저쪽 산 정상에 있는 동상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