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윤씨 종가 녹우당에 있는 국보 240호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우리나라 초상화 가운데서 최고의 걸작, 불후의 명작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분의 눈매는 상당히 매서워 첫 인상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활활 타오르는 듯한 수염은 내면 깊은 곳으로 부터 기(氣)를 발산하는 듯하다.
그렇게 작품을 계속 바라보노라면 점차 으스스한 느낌이 들고 결국은 어느 순간 섬뜩한 공포감에 사로잡히기까지 한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그러나 초상화를 자세히 보면 머리부분만 그려져 있을 뿐 몸체도 귀도 없는 미완성의 그림이다.
왜 이런 엽기적인 자화상을 그렸을까 하는 의문이 최근에 상당 부분 풀렸다는 기사를 소개한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지금도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온전한 그림이었다. 자화상은 윤곽선만 그린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채색까지 되어 있었다. 단지 이런 부분들이 후대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사실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지난해 용산 박물관 개관 특별전을 위해 윤씨 종가에서 빌려온 액자 형태의 <윤두서 자화상>을 처음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밝혀냈다. 연구팀은 박물관이 최근 펴낸 <미술자료>74호에 ‘윤두서 자화상의 표현기법 및 안료 분석’이란 글을 싣고 상세한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우선 적외선 투시 분석 결과 눈으로 보기 힘든 상체의 옷깃과 도포의 옷 주름 선의 표현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져온 양쪽 귀또한 왜소하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져 학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왼쪽 사진은 1937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사료집진속〉에 상체 도포가 그려진 모습으로 실린
윤두서의 옛 자화상 도판이며 오른쪽 사진은 상체를 볼 수 없는 현재 자화상의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공재의 자화상에 원래 상체가 그려졌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작고한 미술사가 오주석이 지난 96년 조선총독부 자료인 <조선사료집진속>(1937년 간행)에서 상체 윤곽이 보이는 당시 공재의 자화상 도판을 발굴해 공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오주석은 “원래 윤두서 자화상은 밑그림 그릴 때 쓰는 유탄(버드나무 숯)으로 화면 위에 상체를 그렸다가 미처 먹선으로 다시 그리지 않은 채 미완성 상태로 전해졌다”고 추정했다. “후대 표구하는 과정에서 표면을 문질러 유탄 자국을 지워버리는 실수를 한 것”이라는 견해였다. 원래 자화상에 있던 공재의 상체 그림이 후대 표구과정에서 실수로 사라져버렸다는 그의 주장은 이후 통설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이번 조사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사라진 몸체를 그린 방식을 놓고 벌어졌던 학계의 논란또한 다시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림 화면 앞 표면에 몸체를 그렸다는 오주석의 주장에 대해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옛 자화상 사진에 보이는 옷주름은 뒷면에 윤곽선을 그린 이른바 배선법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양보없는 논쟁을 벌여왔다. “<조선사료집진속>에 실린 자화상의 사진은 그림 뒤에서 조명을 비추어 찍었기 때문에 뒷면 옷주름선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라는게 이 교수의 견해다.
그렇다면 박물관 분석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일단 두 주장 가운데 한쪽에 당장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워보인다. 박물관쪽은 현존 <자화상>의 화면 앞쪽을 현미경으로 정밀 관찰한 결과 화폭 앞 표면에 어깨 부분 옷깃, 옷주름 등을 그린 듯한 부분적인 선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외선 사진에서 확인된 것처럼 몸체의 형상을 이루는 일관된 선의 흔적은 확인하지 못했다. 통상 적외선 조사는 안료 등으로 가려진 먹선, 즉 채색화의 밑그림이나 먹글씨를 확인하는데 주로 쓰인다. 선이 연속되도록 최소한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먹의 탄소 입자가 적외선을 흡수해 먹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자화상 전면에 보이는 일부 선의 흔적보다 적외선 촬영 사진에서 나타난 몸체의 윤곽선이 더욱 뚜렷한 만큼 앞 표면의 윤곽선이 적외선 사진의 윤곽선으로 찍혔다고 보기에는 미진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놓고 보면 그림 뒷면에서 선을 그려 비쳐보이게 하는 얼개로 몸체를 나타냈다는 이태호 교수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단정은 어렵다. 이 그림이 액자로 표구되면서 배접(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그림 뒷면에 다른 종이를 포개 덧대는 것)된 탓에 현재 뒷면을 드러내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몸체의 선들이 앞면에 그려진 유탄 혹은 먹선의 흔적인지, 그림 뒷면에 그린 윤곽선인지는 그림 뒷면을 제대로 조사한 뒤에야 규명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결론지었다.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