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코뚜레

석탈해 2010. 11. 6. 10:06

 

 

왕 방울만한 두 눈에 눈물이 흘렀다.

버둥거려 보지만 코끝에서 전해지는 아픔은 오히려 배가 되어 돌아왔다.

끝부분이 날카로운 대나무 꼬챙이가 이미 코청에 구멍을 뚫고 나간 뒤였다.

담장 옆 감나무에 바싹 당겨 목줄을 맬 때 까지도 이럴 줄 몰랐다.

채워진 코뚜레 사이로 흐르는 끈끈한 액체를 긴 혀로 연신 핥았다.

피가 흐르는 코에 왕소금 한 줌이 뿌려졌다.


시골의 한우는 대개 일소였다.

소는 가족의 한 구성원이자 재산 1호였다.

코뚜레가 채워진 소는 농부의 손에 의해 일 잘하는 소로 길 들여 진다.

잘 길들여진 한우는 몇 사람 몫의 일을 부지런히 해낸다.

어미 누렁이는 길이 잘든 소였다.

밭을 갈다가도 고랑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자기가 알아서 다음 고랑 위치로 가서 섰다.

코뚜레와 연결된 고삐를 당기지 않아도 농부의 마음 가는대로 움직여 준다.

일을 끝낸 뒤 꼴 한 짐 베어 실은 주인이 달구지에 걸터앉으면, 고삐를 당겨 방향을 잡아주지 않아도 집을 찾아갔다.

일머리를 잘 아는 머슴 같았다.


어느 해 봄에 누렁이가 새끼를 낳았다.

아직 찬바람이 새봄을 시샘해 한기를 느끼게 하는 날이었다.

산모에게는 소죽 끓일 때 보리쌀과 콩 한 홉을 집어넣어 특별식으로 만들어 주었다.

소죽이 끓는 솥에 검지손가락 정도 굵기의 물푸레나무를 다듬어 양쪽 끝을 묶고 넣었다.

소죽을 여물통에 퍼낼 때 꺼내 식힌 뒤 껍질을 벗기고, 모양이 둥근 상태를 유지하도록 단단히 묶어 외양간 기둥에 걸어 두었다.

송아지가 컸을 때 사용하려고 미리 준비해 둔 코뚜레였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았다.

하늘도 푸르고 높았다.

외양간을 탈출한 자유스러움에 보태어 하늘의 푸르름과 텃밭의 초록색이 너무 좋았던 거다.

그래서 송아지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기분 냈던 것이었다.

밭을 해쳐놓는 것인지도 몰랐다.

텃밭에 심겨진 것이 고추인지 그것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 송아지는 몰랐다.

그리고 오늘 이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코뚜레를 하지 않는 한우는 비육우로 분류된다.

비육우는 단기간에 살을 찌워 팔기위해 좁은 공간에 가두어 놓고 키운다.

가급적 운동도 제한하고 사료 먹여 키운다.

나이 들기 전 육질 좋을 때 팔려서 도살장에서 생명을 다한다.

코뚜레를 한 한우는 주인과 함께 일한다.

농사철에는 고되지만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거의 수명을 다할 때 까지 산다.

코뚜레는 통제의 목적으로 채웠지만 세월이 소통의 목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코뚜레는 오히려 농부와 소에게 상생의 축복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 앞마당 화단을 송아지가 망쳐 놓았었는데 그때부터 코뚜레를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싸리문까지 밀치고 나와 텃밭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고추는 아직 몇 번 더 따야 하는데 가지가 다 꺾였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이웃집 김씨가 달려왔다.

뛰어다니느라 숨이 가쁜 녀석의 목줄을 당겨 감나무에 바싹 매었다.

김씨는 목을 감싸 쥐고 주인은 코청을 주저 없이 뚫었다.

대나무 끝에 선홍색 피가 묻어났다.

녀석은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다 이게 진짜 한 가족이 되는 신고식이란다. 이눔아!  


지금도 일이 잘 안 풀리는 집안은 미신 같지만 코뚜레를 벽에 걸어두는 것을 본적이 있다.

부지런한 소 한 마리 들여 놓는 심정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 볼 때 어쩌면 머릿속에 첫 기억으로 남는 그 순간부터가 우리에게 인생의 코뚜레가 채워진 순간이 아닌가 한다.

고삐를 부모님이 쥐고 있을 때도 있고,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가 쥐고 있을 때도 있다.

애들은 애들 크기의 코뚜레를, 어른은 어른 크기의 코뚜레를 하고 말이다.

코뚜레를 감시나 통제로만 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려는, 관심과 사랑으로 보려한다면 더 편안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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