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터키: 앙카라 한국공원(2011년 2월 16일)

석탈해 2011. 3. 1. 23:19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하루밤을 지냈다.

 어제 저녁. 현지 가이드가 오늘 일정은 4시 30분에 모닝콜, 5시 30분에 식사, 6시 30분에 출발을 하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이야긴지.....

 4시 30분 부터 강행하는 여행이 어디 있는지?

 그런데 그렇게 해도 다들 따라올거라고 했다.

 오늘 아침... 가이드 예언대로 일어나서 씻고, 아침 호텔식으로 먹고, 지금 차에 앉아 있다.

 이게 시차라는 구나...서울은 지금 11시 30분.

 

 무스타파 케말의 동상 옆을 지나간다.

 무스타파 케말은 터키의 전쟁 영웅이자 신생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이었으며 과감한 서구화 개혁정책으로 터키 공화국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1934년 터키 대국민의회는 그를 아타튀르크(터키인의 아버지, 국부)라는 성씨를 만장일치로 부여했다.

 한국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관리인이 우리가 도착하니 문을 열어 준다.

 

 탑에는 터키군이 한국전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터키 공화국 건립 제 50주년 기념일을 기하여 한국 정부가 터키국민에게 1973년에 헌납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탑을 보니 우리가 만들어 헌납했다면 모양이 왜 이 모양일까?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했던 탑의 형식은 3층탑이었고 그 외의 시대에도 내가 알기로  탑은 5층, 7층, 9층탑이 대부분이다.

2층 기단을 가진 3층탑도 아니고 4층 탑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그 낮선 모습에 반가웠던 마음이 반감하고 말았다.

당시 전사했던 터키군 용사들의 명단이 적혀져 있다.

1929년, 1930년생...당시 전사일을 보니 스물 한살, 스물 두살 꽃 다운 청년 시절에 꿈 한번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이다.

그들의 희생에 우리 일행은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빌었다.

 터키인들을 만나면 많은 사람이 자기 큰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고 한다.

한국 전쟁에 참전해서 전사한 큰 아버지가 그렇게 많은지...

가이드 말로는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좀 더 호감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고 상당 부분은 거짓말 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대하는 것은 분명하다.

2002년 월드컵이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월드컵 본선 조별 예선에서 터키는 브라질과 만났는데 그때 주심이 한국인 이었다.
형제의 나라에서 형제 국민이 주심보는데 뭔가 덕을 볼 것 같아 터키는 잔뜩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후반전에 좀 애매 하기는 했지만 터키 골문에서 수비수가 태클 한것에 대해 심판이 프리킥 판정과 함께 선수를 퇴장시켰고 결국 터키가 패배했다.

당시 터키에서는 난리가 났다. 우리가 전쟁때 피를 흘리고 도와 줬는데 이럴 수 있느냐 한국상품 불매하자...등등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한다.
이 분위기가 역전 된 것이 바로 대한민국과 경기를 치른 3-4위전 결정전이었다고 한다.

경기 시작전에 국가가 연주되는데 어떤나라에도 해 주지 않았던 초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 아래에서 상단까지 덮히며 올라간 것이다.

터키 중계방송 아나운서도  너무 감격해서 방송사고라고 할 정도로 10여 초 동안 아무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우리가 경기에서도 져 주었지요(?)

지금도 터키인들은 월드컵하면 이때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이제 카파도키아로 향한다

소요시간은 4시간 정도가 걸린다.

길가에 산들은 나무가 별로 없다.

척박한 석회 토질이어서 그런것 같다.

아침 시간이라 집집마다 굴뚝에는 밥 짓는 연기가 난다.

여기는 터키니까 빵 굽는 연기라 해야 되나요.

이른 아침에 굴뚝에 연기 솔솔 올라오면  아침상을 맞이하는 가족들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져 왠지 푸근하고 행복한 느낌이 든다.

달리고...

또 달린다.

끝 없는 벌판이 이어진다. 

 

 

 

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도 돈 내고 가야한다.

 

 

 

이제 카파도키아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