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무데뽀에는 막무가내로...

석탈해 2011. 8. 3. 03:59

 

 

 

 일본의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루려 했던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정적은 쓰기야시이다.

당시 포르투갈에서 조총이 들어왔는데 사무라이 쓰기야시는 이를 무시했고 오다 노부나가는 이를 적절히 이용했다.

당시 조총은 화약을 재고 쏘는데 시간이 걸렸는데 오다 노부나가는 3열 횡대로 진을 갖추고 한명이 쏘고 있을 때 뒤에 둘은 차례로 화약을 총신에 넣어 재고, 앞 사람이 총을 쏘고 화약을 재기위해 뒤로 빠지면 그 다음 병사가 앞으로 나가 심지에 불을 붙이고 총을 쏘았다.

당시 조총을 철포(鐵砲)라고 썼는데 일본말로 읽으면 대뽀가 된다.

대뽀를 무시한 쓰기야시는 철포 없이 즉 무대뽀(無鐵砲)로 싸웠는데 승패는 뻔한 결과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후 차례로 정적을 쓰러뜨리고 전국시대를 호령하는 1인자가 되었다.

무대뽀라고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넘버 쓰리다.

넘버 쓰리에서 배우 송강호가 똘마니 둘을 앞에 두고 교육하면서 무대뽀 정신을 강조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결국 무식한 놈은 준비도 없고 논리도 없으니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덤벼들자는 말이다.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년) 신라장군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이래 우리 영토였고,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해 왔다.  

그 이후 고지도, 고문서뿐만 아니라 일본의 외교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다.

그런데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대한제국에 한일의정서를 강제 조인하여 군사적 요충지를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러시아 함대의 남하를 감시하는 해군망루를 독도에 만들었다.

이어 1905년 1월 일본은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영토를 편입하고 이름을 다케시마(竹島)로 하며 시마네현 행정소관으로 한다고 결정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 사실이 세계에 알려질 것이 두려워 『관보』에 싣지도 못하였다.

‘유주지(有主地)’인 독도를 ‘무주지’(주인 없는 땅)이기 때문에 일본에 편입한다는 결정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불법적, 무효의 결정이었다.

대한 제국도 1906년에 이 사실을 알고 참정대신이 즉각 일본의 불법성을 규탄하였으며 독도를 강원도 관할에서 경북 관할로 이관했다.

그 후 우리나라는 1910년 일제에 병탄되어 버렸으나 해방과 동시에 독도도 함께 되찾게 되었다.

 

지난 8월 1일 강경 우익성향의 일본 자민당 의원 3인방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쟁점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울릉도 방문을 예고하고 입국하려다 우리정부의 입국금지 조치로 공항 내 대기실에 머물며 출국을 9시간 가까이 거부하다 결국은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

무대뽀도 이런 무대뽀가 없다.

그 중에 울릉도 방문 단장인 신도 의원은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 육군 대장의 외손자이다.

일본정부도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내용이 들어간 방위백서를 발간했다.

제국주의 일본의 피가 망령처럼 되살아나고 있음에 섬뜩해진다.

그들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 저질렀던 전쟁 범죄를 벌써 있어버린 것 같다.

두들겨 맞은 사람은 아직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정작 우리가 찾아와야 할 땅이 있다. 바로 대마도이다.

대마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역사적인 근거는 충분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대마도가 삼국시대 이래 경상도 계림에 속했으며, 세종 2년(1420년)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한 이후 대마도는 계속 조선에 조공을 바쳤고, 16세기까지도 대마도주는 정기적으로 조선 국왕을 알현하는 사신을 보내 조선으로부터 관직을 임명 받았다.

심지어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만든 팔도전도는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시하고, 공격대상으로 적시했다.

이와 함께 일본 역사서인 ‘진대’와 대마도 역사서인 ‘대주편년략’에도 대마도가 조선의 땅이란 기록 또한 있다.  

 

1949년 1월 8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이승만 [동아일보 보도 기사]

 

하지만 조선이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관심을 놓은 사이, 열강과 손잡은 일본의 메이지 정부가 1877년 대마도를 나가사키현에 편입시켰고 미국은 동아시아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일본 측 요구를  수용하면서 일본 땅이 됐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고, 입법의원들도 대일강화 조약에 넣자는 결의안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대마도는 급속한 일본화가 진행되었다.

지금도 대마도에 가면 한국인 관광객을 의식해서인지 한글로 ‘대마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입니다’라고 수로변 곳곳에 붙여두었다.

굳이 이렇게 걸어 둔 것을 보니 뭔가 찔리는 것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일본의 무대뽀에 우리도 막무가내로 나가면 어떨까?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서 이참에 대마도를 돌려받아야겠다고 우리 국민 모두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면 일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진다.

가미가재 특공대가 미국 항공모함을 향에 죽음의 돌진을 한 것이 얼마나 무데뽀 같은 짓 이었는지, 근거도 없는 독도 영유권 주장이 무데뽀라는 것을 일본은 깨달아야 한다.

독도에는 대나무 한그루 없다.

죽도 즉 다케시마(竹島)라 부를 근거도 없다.

죽도(竹刀)로 죽도록 맞아야 일본은 정신을 차릴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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