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발관에서

석탈해 2012. 11. 3. 15:38

 

 

그곳엔 처음 갔다.

막내아들 녀석을 운동하는 체육관에 차로 데려다주고 머리나 깎자 싶어서 삼색등만 보고 들어간 곳이다.

아파트 촌 사이에 있는 이발관에는 환갑을 몇 해 전에 넘긴듯한 얼굴의 이발사가 토요일 오전을 무료하게 보내다 나를 반긴다.

들어서니 요즘 여느 이발관이나 미용실과는 사뭇 다르다.

이발의자 세 개와 세면대, 그리고 소파 하나.

벽에 세련된 커트를 한 모델 사진이나 흔해 빠진 TV도 없다.

그냥 라디오 한 대 칙칙 거리며 노래 소리 나오는 그야말로 옛날 시골 이발관 분위기다.

 

어릴 적 시골 우리 동네에는 인근 마을 통틀어 한 곳 뿐인 이발관이 있었다.

신작로를 먼지 날리며 오는 완행버스도 이발관 앞에 오면 멈춰 서기에 이발관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위와 추위를 피하기에도 딱 좋은 곳이었다.

주변 마을 남자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거의 그 곳을 이용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이발의자 팔걸이를 가로 질러 나무판자를 걸쳐놓고 그 위에 앉아서 깎았다.

평상시에 띄엄띄엄 오던 손님도 명절 앞이면 몰려드니 이발사 입장에서 명절은 한 대목이었다.

이렇게 바쁠 때는 이발을 보조하거나 머리만 감겨주는 총각이 따로 있었다.

시멘트로 만든 세면대 옆 칸은 길어온 물을 저장하는 공간이 있었고, 세면대에는 향기 좋은 세수 비누와 고슴도치 같은 플라스틱 머릿솔이 놓여있었다.

이발 후 세면대 앞에 놓여 있는 둥근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걸치면 보조 총각은 거품이 나도록 비누를 머리에 바르고 머릿솔로 빡빡 밀어댔다. 그래야 비듬이 빠진다고 했다.

아팠다. 아프긴 아픈데 아프다고 소리 지르지는 않았다.

머리 감을 때 아프지만 이발하고 나면 훨씬 개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선생님, 머리 어떻게 자를까요?’

순간적으로 ... 어떻게 알았지요?’ 하고 되물을 뻔했다.

지금 이발사에겐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쓴 말인데 말이다.

이발사는 능숙하고 익숙한 솜씨로 빗질 하면서 가위질을 한다.

이리 저리 재고 다듬으면서 20여분...

그리고 칼 가는 가죽띠에 면도날을 세우고 면도를 한다.

차갑게 날 선 칼날이 목덜미에 닿았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전기면도기와는 다른 감촉에 잠시 움찔했다.

면도 후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세면대에 엎드리니 이발사가 손수 머리를 감겨준다.

물론 머릿솔로 빡빡 밀어대는 것은 없다.

사실 나는 10년 이상이나 10분 내로 모든 공정을 끝내는 컷 전문 이발관에 다니고 있다.

거기서는 머리 감기도 셀프다.

디지털시대에 맞게 빠른 것은 좋은데 오늘 여기서는 뭔가 대접받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거울 앞 라디오에서는 아날로그적 감성의 밴드 버스커 버스커 CM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정작 CM은 디지털 세상의 더 빠름! 빠름!을 외쳐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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