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중국: 소주(2003년 1월 27일)

석탈해 2009. 8. 31. 13:06

2003년 1월 27일

  

 기상을 8시 20분에야 했다.

호텔내 식당에서 급히 식사를 하고 9시 35분 소주로 향했다.

현지 가이드는 중국여행의 주의사항을 말한다.

역시 첫 번째는 여권과 지갑 잘 챙기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안주머니를 더듬어 보았다.

이 곳 상해는 현재 영상 7~8도 정도의 낮온도이나 여름은 최고 40도의 수은주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와이프 없어도 에어컨은 있어야 한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덥고 습해서 에어컨이 없는 집이 없다.

상해는 우리 서울의 10배 정도의 크기이며 그 안에 사는 사람의 경제수준도 천차 만별이라 한다.

계림은 비가 오면 아름답고, 중경은 안개 끼면 아름답고, 이곳 상해는 야경이 아름답단다.

중국은 5일 근무제라 평일에는 일기예보를 하더라도 온도가 40도 넘는다면 출근 않하기 때문에 39도 정도로 이야기한다고 한다.

물론 토,일요일은 40도 올라가면 바르게 예보하지만....

오늘 상해의 아침은 안개가 많이 끼어 있다.

황포강(양자강의 지류) 다리를 건너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들판을 가로지른 상해 소주간 고속도로를 계속 달렸다.

산이 없고 땅은 국가 소유인지라 고속도로는 그저 일직선으로 거침없이 계속된다.

고속도로에 즐비한 차량들과 광활한 영토에서, 중국의 힘과 잠재적인 경제력을 새삼 느껴본다.

이 지역은 습기가 많아 빨래가 잘 안말라 도로변 20층의 고층 아파트에서도 날이 맑으면 어김없이 대나무에 빨래를 끼워 밖으로 내건다. 집안에서는 이삼일 두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농가도 2층 3층으로 되어 있는데 역시 습기가 많아서 1층은 살 수 없어서 창고 등으로 사용하고 2,3층을 거주공간과 침실로 사용한다고 한다.

 

11시 30분 실크로 유명해 "비단장수 왕서방의 고향"이라는 2,500년의 역사도시 소주에 도착했다

이곳 소주는 춘추시대 오나라 지역으로 양자강 삼각주 평원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수나라때 건설한 운하가 도시를 가로 지르고 있고 곳곳에 수로가 있어서 동양의 베니스'라고 할 정도로 물의 도시이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중국 4대 정원중 하나인 졸정원으로 갔다.

졸정원은 명나라때 왕헌신이 중앙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칩거할 때 개축한 것이다.

졸정원은 동.중.서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핵심은 중원에 집중되어 있다. 중원에는 원향당, 향주, 독특한 모양의 견산루와 파산랑, 비파, 해당, 파초가 빽빽히 들어선 비파원 등의 건축물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16년의 공사로 만들었다는 이 인공정원은 전체 15,000평의 넓이로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곳에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눈이 바람과 함께 몰아쳤다.

아열대 기후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서설이라 여기 사람들은 다들 뛰쳐 나와서 좋아들 하지만 우리 일행은 무척 추위를 느끼면서 관람했다. 촬영도 곤란할 정도였다.

 

 

 

 

 

 

 

 

 

 

 

 

 

 

 

 

주차장으로 나와 화장실에 갔더니 소변기 옆에 몇칸의 칸막이가 없는 개방된 마치 옛날 우리 시골의 푸세식(?)같은 대변기가 있었다.

마침 대변기에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아저씨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식당으로 갔다. 찬 바람에 돌아다녔더니 머리가 좀 아프다. 감기 기운인가해서 감기약 2알을 먹었다. 점심식사는 영 입맛이 돌지 않아 고추장과 멸치에 밥 비벼서 대충 때웠다.

식당밖에는 또 장사꾼들이 모여든다. 이번에는 부채와 이호 그리고 피리를 판다. 이호(우리의 아쟁과 비슷한 중국악기)와 피리를 처음에는 만원이라 했다가 흥정이 시작되더니 곧 3천원으로 내려왔다. 두분 선생님이 구입했는데, 우리 일행중 어느 선생님은 한국비행기 타면 소리 안날 거라고 장담을 하신다.

버스 속은 돌연 이호 악기 연주장이 되었다. 대나무 통에 2줄의 현을 단 이호 소리가 '삑''삑' 거린다. 저 소음에 가까운 음악을 얼마동안 들어야 할지....?

버스를 타고 좀 가니 햇빛이 난다. 양나라때 지은 사찰이며 당 나라의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 이라는 시로 인해 유명해진 사찰인 한산사에 도착하니 2시 5분 이었다.

한산사는 몇 차례 전란으로 소실된 적이 있으며, 현재의 건축은 청나라 때(1911) 중수된 것이다.

당나라 때 한산과 습득이라는 두 고승이 이곳에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 중 한산이라는 고승이 주지를 지낸 후 한산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경내를 두루 관람하고 버스에 오르니 또 눈이 내린다. 이번 여행은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

2시 40분 호구산으로 출발했다.

소주의 가로수는 향단나무다. 향이나서 옷장 만들어 사용하면 곰팡이도 잘 피지 않아서 소주에서는 딸 낳으면 집앞에 향단나무 한그루 심어 시집갈 때 장롱 만들어 준다고 한다. 이곳 소주 역시 습도가 높으며 습도가 높아서 더 춥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곳 소주는 산이 하나 있는데 높이가 34.3m인 호구산이다.

원래 춘추시대 오나라의 왕 합려의 묘지였는데, 호구라는 이름은 장례를 지낸 지 3일째 되던 날 백호 한 마리가 나타나 능을 지켰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그리고 호구전체의 모습이 호랑이를 닮아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호구산은 앞산은 자연, 뒷산은 인공으로 쌓은 산으로 산위에는 약 15도로 기울어져 있는 동방의 피사탑이라는 높이 47.5m의 중국 최고 팔각 칠층벽돌탑인 호구탑이 있다.

표를 구매하고 들어서면 오른쪽에 칼로 베어낸 듯 둘로 갈라진 시검석이 있다. 오 왕 합려가 검을 시험하기 위하여 내려치니 두 동강이 났다고 한다.

언덕을 다 오르면 천인석이라는 평평한 바위가 나온다. 이 이름이 유래로는 두가지가 있는 데 하나는 오왕이 무덤이 완성되고 그안에 명검과 보물들을 숨겨두고 비밀을 지키기위해 공사에 참여한 인부 1천명을 이곳에서 죽였다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1천명이 이 바위에 앉아 생공이라는 고승의 설법을 들었다는 것이다.

 

 

 

 

 

 

 

 

 

 

 

호구탑에서 내려오니 또다시 비단을 든 장사꾼이 모여든다. 그 중 이호와 피리를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두가지 합해서 2천원이란다.

앞서 3천원에 산 이호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3시 55분 비단공장에 도착했다. 단체 여행코스에 국영공장이나 상점을 반드시 끼워 넣는 중국의 상술을 또 한번 느끼며 둘러 본 뒤 식사후 항주로 향했다.

소주에서 항주까지 버스로 2시간 30분 거리다.

길가 주변 농가 대부분은 깜깜해 인적이 없는 듯 보이나 중국은 전기세가 비싸 저녁되면 거의 다 불을 끄고 방하나만 사용한다고 한다. 더 아끼는 집은 TV만 켜 놓고 그 불빛으로 저녁을 보낸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 땅은 국가 땅이나 집은 개인 것으로 사고 팔 수가 있다고 하고 농토도 최장 70년 사용 계약하고 매년 해당하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9시 20분 항주의 오주대주점(hotel)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