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괭이밥

석탈해 2009. 9. 15. 17:37

 

우리 반 교실 운동장편 창 앞에는 현관 테라스가 있다.

신학기 환경정리 때 사온 철쭉이 시들시들 말라 가기에 테라스에 내놓은 지 몇 달이 되었다.

가장 큰 나무줄기는 결국 말라 버렸지만 나머지 작은 줄기는 올 여름 내린 비 덕분에 기운을 차렸다.

화분 가장자리에는 또 다른 식물이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어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괭이밥이다.

애초에 거기 있었는지 어디서 씨가 날아와서 싹을 틔웠는지 모르지만 철쭉아래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작은 하트 모양 이파리 3장을 부채춤 추듯 붙어서 가을바람에 하늘하늘 거린다.

오이처럼 생긴 밥풀만한 씨방을 위로 치켜들고 장터 오이 장수처럼 물 좋은 놈 들여 놓으라는 듯이 바람결에 좌우로 흔들어 댄다.

정작 손이 닫기라도 하면 톡하고 씨방속의 씨를 매몰차게 사방으로 흩어버린다.

이 녀석의 먼 조상도 이렇게 자손을 퍼트렸을 것이다.

옛 시골 담장아래에도 괭이밥이 많았다.

사람들 발치 닿지 않는 흙담 아래에 무리를 지어 한들거리며 노랑꽃을 피우던 괭이밥은 소꿉놀이의 도구이기도 했다.

씨방속의 씨는 밥이 되고 이파리는 찧어서 사금파리에 놓인 반찬이 되었다.



세월의 흐름에 눈은 점점 크고 화려함만을 쫒다가 우연히 발견한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수줍음 많은 괭이밥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본다.

오늘은 학교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옛 친구였던 괭이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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