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닭 그리고 계란

석탈해 2009. 11. 4. 12:24

 

 

닭은 약 5,000년 전에 인도, 말레이시아에서 가축화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닭이 들어와서 사육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경주 천마총 발굴 때 계란 껍데기가 나온 걸로 봐서 삼국시대에는 이미 사육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해외 여행하면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음식 중의 하나가 닭고기와 계란요리가 아닌가 한다.
중국 항주를 여행할 때 영은사 앞의 식당가에서 닭다리만 수십 개를 걸어 말리는 것을 보았다.
태국에서도 길거리 곳곳에서 닭요리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보았다.
우리 주변에도 통닭집은 수도 없이 많고 닭이나 계란과 관련된 음식을 파는 가게들도 성업 중이다.
이렇듯 닭은 이제 세계인의 식탁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의 원천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 애들은 가끔 저녁에 입이 궁금하다며 통닭 시켜 달라 하고,
다른 반찬 없더라도 계란 프라이 하나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낸다.

내 나이 여섯 살쯤까지 아버지는 신탄진의 전매청 연초제조창에 근무하셨는데,
도회지의 다람쥐 쳇바퀴처럼 도는 듯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시고 낙향해서 양계장을 시작했었다.
그때 당시 대형 양계장이 별로 없을 때라 계란은 귀한 음식이었다.
계란은 모아서 깨지지 않게 왕겨를 담은 커다란 항아리에 넣어 두었는데
심심하면 하나씩 몰래 꺼내 위아래에 구멍을 뚫고 날로 먹었다.
계란 아래에 입에 대고 하늘을 쳐다보며 빨아 당기면 흰자위 먼저 나온다.
노른자는 작은 구멍에 걸려 잘 나오지 않는데 이때 다시 한번 '훅' 하고 빨아들이면
노른자가 터지면서 입안에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흘러 들어오는 게 좋았다.
초등학교 때 소풍날이면 달콤한 '동방사이다' 한 병하고 계란 몇 개 삶아 가는 것이
당시로는 최고의 도시락이었다.
소풍 때나 명절 앞에는 이웃마을 사람들 까지도 계란을 사러 우리 집에 오곤 했다.
그런 계란을 그래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나를 친구들은 꽤 부러워했었다.
한번은 갖 낳은 따뜻한 계란이 먹고 싶어 닭장 안에 들어갔다가, 수탉이 달려들어 얼굴을 할 켜 혼난 적이 있다.
자지러지는 듯한 소리에 할머니, 부모님께서 달려오셔서 구출(?)한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수탉은 미운털이 박혔고, 한 동안 닭장 밖에서 철망 안으로 들여다보며 수탉에게 어린 나이에
얘기 할 수 있는 최대의 저주를 퍼부어 대곤 했다.
자기 영역과 암컷을 지키려는 수탉의 본능이라는 건 그 나이에 내가 알리가 없었다.

몇 해 전, 큰애가 다섯살때 고향집 수탉에게 나처럼 당했다.
어머니가 수탉이 나이를 많이 먹어 처분해야 한다며 잡아서 가족들 보신이나 하자고 하셨지만
잡을 손도 없고 해서 모두 차일피일 미루었었는데, 마당에 나갔던 큰애가 수탉의 공격에 사색이 되어있었다.
결국, 괘씸죄에 걸려 그날로 그 수탉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지금도 시골 우리 집에 가면 예전처럼 양계장은 하지 않지만 암탉을 서너 마리 키운다.
텃밭에서 벌레 잡아먹고, 풀 뜯어 먹고 돌아다니다 짚더미 위에 알을 낳는다.
그렇게 낳은 계란은 노른자 색깔부터 다르다.
운동하지 않고 사료로 키운 닭이 낳은 계란의 노른자는 그냥 노란색에 불과하지만,
우리 시골 닭은 자연 속에서 먹이를 구하다 보니 노른자가 주홍색에 가까울 정도로 붉다.
그러니 성분 분석은 해보지는 않았지만 영양가 자체가 다르리라 본다.
제사나 명절 때 전을 부치면 시골 닭이 낳은 계란은 더욱 색깔이 예쁘게 나온다.
부침개 색깔만 봐도 인공사료로 키운 슈퍼마켓 계란인지 시골집 닭이 낳은 계란인지 분간이 간다.

매주 월요일이면 계란 할머니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른다.
보자기에 계란 몇 판을 이고, 아파트 이 통로 저 통로를 돌며 파는데 아내는 슈퍼보다 가격이 싼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가 안 돼 보여서 한판씩 구입한단다.
우리 애들은 워낙 계란을 좋아하는 녀석들이라 계란 한판도 일주일이면 동난다. 
며칠 매서운 바람이 불며 이제야 슬슬 겨울 맛이 난다.
추우니까 첫째 아들 녀석은 제 손등을 맞대어 비비더니 내 코앞에 들이댄다.
'아빠 닭똥 냄새가 나지 맡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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