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

참전용사 시드니 스미스(Sydney Smith)

석탈해 2011. 6. 26. 21:46

 

 

노병은 건장했다.

6.25전쟁 때 통신병으로 참전했던 영국인 시드니 스미스씨는 올해 83세의 노인이었다.

훤칠한 키에 벽안의 노인 가슴에는 다섯 개의 자랑스러운 훈장이 반짝거렸다.

나는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 2박 3일 연수 때문에 묵었다.

일과가 끝난뒤 호텔 수영장 옆에 있는 비어가든에 연수 동료교사들과 들렀다가 참전용사 스미스씨를 만났다.

스미스씨는 오늘 이 호텔에서 있었던 6.25전쟁 61주년 국제 학술 세미나에 초청되어 왔다고 한다.

동행한 3사관학교 교수님이 무대의 마이크를 잡고, 손님들에게 이곳에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참전용사가 있다고 소개하는 바람에 알았다.

자리를 옮겨 인사를 하고 한국전쟁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했다.

 

시드니 스미스씨(왼쪽)와 3사관학교 이 교수님

 

시드니 스미스씨는 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4년경에 몽고메리 장군아래에서 10대 후반의 나이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전령 노릇을 했다고 했다.

1951년에는 영국군 통신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1952년까지 인천과 부산, 대구 등지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한번은 타고 가던 지프에 북한군 총탄이 날아들어 코트와 의자를 관통했는데 1인치 정도가 벗어나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노병이 꺼낸 휴대폰에는 젊은 시절 오토바이 타고 찍은 사진, 한국 전쟁 당시 찍은 전우들 사진, 숭례문 사진, 시골 어느 거리의 흑백사진들이 스크롤 되었다.

 

좀 전에 참전용사라는 이야기를 들은 다른 테이블의 손님이 과일안주를 보내왔다.

역시 정이라면 세계 1등 한국인들이다.

노병은 일어나서 잔을 치켜들며 몇 번이나 고맙다는 표시를 한다.

영국에 있는 스미스씨와 자주 연락하며 지내신다는 3사관학교 이 교수님은 파더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늘 행사때문에 방문하는 스미스씨를 동대구역에 마중 나갔는데,

피부색이 다른 서양인을 파더(father), 파더(father)~ 하니까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고 한다.

한국인들의 환대에 고맙고, 한국의 발전상에 놀랍다고 했다.

목숨 걸고 참전해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하니, 그때는 그냥 직업이었다(Just a Job)는 말로 대신했다.

휴대폰의 마지막 사진은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찍은 최근 모습이 있었다.

머리띠에 가죽점퍼.....  노병은 아직도 연세를 무색하게 만드는 정정한 멋쟁이였다.

밤비가 맥주집 창을 두드리는 가운데, 무대에서는 기타 연주에 맞춘 비틀즈의 노래 렛잇비가 클라이막스를 향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사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용 도로  (0) 2011.07.14
해상 산책로  (0) 2011.07.02
멍석을 깔아 놓았건만.....  (0) 2011.06.09
E=mc²   (0) 2011.06.03
양동 교회  (0) 2011.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