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어머니 생신에 고향집에 들렀는데 마침 태어 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고양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붙임성이 많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세상 무서운 걸 모른다 해야 하나......
아무에게나 졸졸 따라다녔다. 밥을 한 술 주니 허겁지겁 먹었다.
작은 시골마을이라 마을사정이 훤하다.
주변에 새끼 낳을 어미 고양이를 키우는 집도 없다.
어디서 왔을까? 들 고양이 새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향집에는 어미 고양이와 사람 같으면 초등학교 다닐 것 같은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축사에 터를 잡고 마당에 산다.
어미 고양이는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많다.
우리 어머니를 대할때도 항상 몇 걸음 떨어져 밥을 주고 가실 때 까지 기다리다 달려든다.
새끼 고양이도 어미로 부터 학습을 해서인지 더욱 경계를 한다.
그렇게 오래 키워도 사람을 경계하니 정이 안 간다고 하신다.
서로 데면데면해도 쥐로부터 곡식을 지키려는 어머니와 밥이 필요한 고양이들은 그렇게 매일 거리를 두고 거래를 한다.
아직 젖도 떼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철부지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내 쫓으면 그만이지만 너무 어리다.
그냥 부모님 집에서 키우기에는 형제도 아닌데 큰 고양이들 텃세에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다른 고양이가 자신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가 싸워서 상처입고 쫓겨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결국 그날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내 차에는 새끼고양이가 실려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힘이 생기면 시골 부모님 집에 풀어주자는 생각으로 데려왔다.
2주일만 키우자.
이런 결정에는 고양이와 관련한 옛 추억도 한몫했다.
어릴 적에 점박이라는 검은 암 고양이를 집에서 키웠다.
점박이라 부른 것은 등 쪽은 검고 배 쪽이 흰색인 검은 고양이가 가지는 일반적인 무늬를 하고 있었지만, 특히 코를 포함해서 왼쪽 입 주위에 타원형의 작은 점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었다.
나를 무지 따랐고 학교 갔다 오는 소리가 나면 마당 멍석에 엎드려 자다가도 달려오던 녀석이었다.
잠 잘 때도 거의 안고 잤던 기억이 난다.
'갈갈~' 거리며 품속으로 파고드는 고양이 특유의 응석마저도 싫지 않았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그린 내 그림 속에는 점박이와 함께한 그림이 많았다.
베란다에 있는 빈 화분에 마사토를 넣어 화장실도 만들고 박스 한쪽을 터서 집도 만들었다.
이름도 지었다. ‘향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향기는 손가락을 살짝 물면서 놀자고 하고, 배를 뒤집어 가며 가족 앞에서 온갖 아양을 떤다. 화장실도 비교적 잘 가린다.
가족이 집을 비우는 경우도 많지만 귀가해 보면 소파에 턱하니 엎드려 있거나 잠을 잔다.
밤에 모두가 잠 잘 때에는 베란다 자기 집에서 자야한다는 훈련을 시키고 있지만, 새벽에 거실로 들어오려고 울어서 잠을 설치게 할 때는 미울 때도 있다.
그래도 애들은 밖에서 들어오면 향기부터 찾는다.
가족 사이에 향기를 두고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향기라는 이름을 쓰려다 자판 영문키를 잘 못 눌러 ‘gidrl’이라고 적었다.
영문 속에도 girl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으니 딸 이름이 맞긴 맞다.
다 큰 아들만 둘이 있는 집에 어린 딸이 생긴 것 같다.
딱 2주일만 딸 하기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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