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경주 단석산 - 화랑들의 무술 수련장

석탈해 2011. 10. 17. 19:26

 

 

 이 정도면 중병(重病)이다. 

주말이 다가오면 인터넷에서 산(山)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나 홀로 산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2011년 11월 16일.

아침 일찍 나서서 경주 단석산으로 향했다.

산은 벌써 붉고, 노란색 계절로 갈아입고 있었다.

단석산은 경주시 건천읍과 산내면 사이에 있는 해발 827.2m의 산이다.

신라의 김유신이 15세에 화랑이 된 뒤 17세에 삼국통일의 포부를 안고 서라벌 서쪽 산에 있는 석굴에서 기도하는 중,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비법이 적힌 책과 신검(神劍)을 주었는데 김유신이 이 칼로 무예를 닦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김유신이 당시 화랑들이 수련하던 이 산에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하여 이후 단석산(斷石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주시 건천읍 송선2리 마을길을 지나 오덕선원 앞에서 좌측 길로 오르면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 초입에서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이 분 역시 홀로 산행을 하는 중이다.

초행인데 이쪽으로 오르면 되느냐고 물었다.

맞다고 한다.

그분은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질문한다.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산을 올랐다.

신선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단석산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신선사로 가는 길...

급경사 구간 안내글이다.

4WD보다도 AWD보다도 성능이 월등한  두다리로 급경사 구간을 그냥 올라간다. 부릉~

 

 

 

신선사 초입으로 들어섰다.

 

 

 신선사 대웅보전 앞 선방은 정갈하다.

 탁자와 두루마리 휴지 한개 밖에 없다. 

 문턱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선방 앞의 낮은 담장 너머로 세상이 보인다.

 차안과 피안의 경계에도 이런 담장이 있을까?

 독경소리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국보 제199호 단석산 신선사(神仙寺)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이다.

신선사 마애 불상군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올라왔는데....

보수공사를 위해 비계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2011월 8월까지 보수공사라고 안내를 해두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공사 중이다.

 

 

 

비계 사이로 몇장 찍어 봤다.

여래 입상이다.

  

 

미륵 반가상(오른쪽)이다.

 

 

역시 여래입상이다.

 

 

공양 인물상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들은 단석산에서 무예를 닦았던 화랑들로 보인다.

버선 같은 모자를 쓰고 두손을 공손히 모아 무언가를 바치고 있다. 

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바로 옆쪽 바위면에 새겨진 미륵불 입상이다.

현실에서는 삼국의 항쟁으로 전장에서 수많은 적의 목을 베고 피를 보아야 하는 그들 이었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업보를 씻고 부처로 태어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미륵불에게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미륵불 입상은 아래쪽에서 비계 사이로 알현한다.

 손바닥을 위, 아래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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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 중턱에 이르면 거대한 암벽이 ㄷ자 모양으로 높이 솟아 하나의 석실(石室)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서 석굴 법당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바위면에는 10구의 불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동북쪽의 독립된 바위면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높이 8.2m의 여래입상이 1구 서 있다. 둥근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며, 머리 위로 2단으로 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작게 솟아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U자형 주름이 선명하고, 트인 가슴 사이로는 띠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내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여 손바닥이 보이게 하고 있다.


동쪽면에는 높이 6m의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데, 상반신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으며, 왼손은 들어서 가슴에 대었고 오른손은 몸 앞에서 보병(寶甁)을 쥐고 있다.


마멸이 심해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남쪽면에도 광배(光背)가 없는 보살상 1구를 새겨서 앞의 두 불상과 함께 삼존상을 이루고 있다. 이 보살상의 동쪽면에는 400여 자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 ‘신선사(神仙寺)에 미륵석상 1구와 삼장보살 2구를 조각하였다’라는 내용이다.


북쪽 바위면에는 모두 7구의 불상과 보살상, 인물상이 얕게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왼쪽에서부터 여래입상, 보관이 생략된 보살입상, 여래입상,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반가사유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왼손을 동쪽으로 가리키고 있어 본존불로 인도하는 독특한 자세를 보여준다.


아래쪽에는 버선같은 모자를 쓰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한 공양상 2구와 스님 한분이 새겨졌는데, 신라인의 모습을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7세기 전반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이 마애불상군은 우리나라 석굴사원의 시원(始原)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당시 신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http://www.cha.go.kr ) 퍼 나름]

 

 

 마애 불상군을 뒤로 하고 산으로 오른다.

 

 

 

 

단석산으로 오르는 이 길은 거의 경사길만 계속된다.

쉰길 바위는 뒤쪽에서 보면 진짜 쉰길이나 되는 두개의 큰 바위이다.

 

 

 

둘로 갈라진 바위... 이 바위 역시 김유신의 칼로 베어진 것 중에 하나는 아닐까?

 

 

 

 

사각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이 순간만은 다른 생각이 스며들 겨를이 없다.

사각 사각 거리는 자연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 

 

 

 

 

 

저 아래 건천읍과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정상석이다.

 

 

일단 단석산 정상석에서 한컷 남겨둔다.

 

 

 정상에서 산 아래서 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 동무했던 그 분이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회사 동료들과 함께한 자리에 불렀다. 

 이분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회사 팀은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를 회무침해 가지고 왔다. 

 전어회에다가 소주 한잔이 곁들어졌다.

 이 맛~ 안 먹어 본사람은 모른다.

 카메라가 없다고 해서 정상석 앞에서 단체 사진찍어서 메일로 보내주었다.

 이렇게 가느다란 인연 하나가 이어졌다.

 

 

 하산길이다.

 

 

 신선사 산령각 앞을 지나고.

 

 

 처음 올라온 길 옆으로 새로 난 도로를 내려가니

 

 

 오덕 선원에 다다랐다.

 배부른 달마 대사는 배를 내놓고 웃고 서 계시는데, 배에 때가 끼었다.

 생명의 잉태를 바라는 여인들의 손길 때문인 듯 하다.

 

 

 선원 앞 텃밭에는 계절을 지각한 호박이 새 생명을 이어가려고 몸집을 키우려 바둥거린다.

 이 세상 삶은 찰나이지만 찰나를 이어붙여야 영원인것을 만물은 본능으로 안다. 

 

 그런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남자....

 통성명도 안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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