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은 1928년 부터 1949년 까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주석을 역임했고, 마오쩌둥의 공산당 세력에 밀려 타이완으로 온 1949년 이후에는 타이완 국민정부의 주석을 지낸 타이완의 국부 장제스 총통의 위업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
중정(中正)은 장제스 총통의 본명이다.
출구가 2개 있는데 대충문(大忠門)으로 들어가서 나올때는 대효문(大孝門)으로 나온다.
1975년 4월 5일 장제스가 사망하자 타이완과 해외 각지의 화교들이 자금을 기부해 세웠는데 본관은 높이 70m 평면적 40㎡로 외관이 웅장하다.
중정기념당의 하층은 전시 센터로 각종 장제스 관련 사진과 전시품 및 영화 상연관이 들어서 있고, 상층은 장제스의 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전시실을 둘러본다.
장제스는 1887년 저장성의 동부 해안 지역에서 소금장사를 하던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위 사진의 가운데 높은 건물이 장제스의 고향집이라고 하였는데 집안 형편이 비교적 넉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제스가 8살 때 아버지가 죽었고, 14살 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이웃 마을의 소녀와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낳았는데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장제스가 세번째로 결혼한 부인은 중국의 국부 쑨원(손문)의 처제로 손미령 여사이다.
이 세번째 결혼은 장제스의 지위를 굳게 해주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장제스 총통의 장남인 장경국(蔣經國)으로 장제스의 뒤를 이어 총통을 역임했다.
장제스 밀랍인형과 재현한 집무실 모습이다.
상층에는 온화한 미소를 띤 장제스의 좌상이 있다.
위에는 장제스가 평소에 중시 했던 윤리, 민주, 과학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위병교대식이 매 시간 마다 있는데...
저녁시간이라 위병퇴근식(?)이 진행되었다.
꼼짝 않고 서 있던 위병이 드디어 발을 떼고 내려온다.
이들을 맞으러 온 위병들과 합류한다.
그리고 서서히 문밖으로 나가고 있다. 퇴근이다. ^^
20m 높이의 육중한 철문이 위병 퇴근후에는 닫힌다.
중정기념당 좌우측 건물은 국가희극청(國家戱劇廳)과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이다.
이곳에서 연극과 음악 공연이 수시로 열린다고 한다.
기념당에서 내려가는 계단은 89개로 89세에 사망한 장제스의 나이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렇게 오늘도 여기 저기 바삐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오늘은 별다른 일정이 없이 귀국하는 날이다.
타이완...
어쩌면 우리와 많이 닮은 나라다.
일본에 의해 식민지 시대를 겪었고, 한때 장제스라는 절대권력을 가진 이가 집권했었고, 현재도 공산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등이 그렇다.
대기업은 거의 없고 120만개의 중소기업이 나라 경제를 움직이는 타이완에서의 3박4일의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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